"연봉보다 봉사 우선" 일도 하고 보람도 찾는 시니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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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15 08:54 조회773회 댓글0건본문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상희원(54)씨는 2년 전 대학생 딸에게 "엄마 인생의 '빛과 소금'은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상씨가 "내 딸"이라 답했더니 딸은 "부담스럽다. 나 말고 다른 걸 찾아보라"고 했다. 상씨는 그 길로 서체 기술을 배우는 캘리그래피 수업에 등록했다.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3개월 만에 강사가 됐다. 중증장애인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맡았다. 주로 각 구청이나 복지재단에서 개설한 강의를 한다. 강사료로 회당 7만~10만원씩 받아 강의 재료를 사는 데 보탠다. 상씨는 "다 큰 애를 붙잡고 극성 엄마 노릇 할 뻔했는데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돼 천만다행"이라 했다.
일하며 봉사하며 새로운 삶을 찾는 5060세대가 늘고 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도보 투어 해설사·한국어 교사·집 수리공 등 다양한 직종에 도전한다.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기여하려는 시니어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70억원을 들여 5060세대를 위한 봉사형(型) 일자리 23개를 만들었다. 2022명이 3.8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 올해는 80억원을 들여 2236명을 고용한다. 시 관계자는 "신청자 대부분이 베이비붐세대(55~63세)로 경험은 많고 희망 연봉은 낮은 최고의 구직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일자리를 잡을 때 급여보다 사회 기여도를 신경 쓴다. 9년 전 일본계 컴퓨터 회사에서 퇴임한 김훈규(60)씨는 시가 고용하는 집 수리공인 '동네 맥가이버'가 됐다. 지난해 매달 52만5000원을 받고 서울 응암2·3동의 반지하 집 200곳을 수리했다. 대기업 임원이던 그는 '고객 만족'을 위해 난생처음 막힌 변기도 뚫었다. 그는 "단칸방에 쪼그려 앉아 곰팡이를 긁어내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새로운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5년 전 중견 건설회사 대표이사로 퇴임한 조영대(67)씨는 돈 안 받는 사진작가가 됐다. 2014년부터 장애인단체와 노인복지기관을 돌면서 1년에 50차례씩 무료 촬영을 한다. 14일에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교복 입은 노인 100명의 독사진을 찍어줬다. 조씨는 "얼마 전 아들이 '나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 했다.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일자리라도 아무나 못 한다. 교육을 이수하거나 자격을 갖춰야 한다. 시 산하재단 '50플러스'는 2016년 50~67세 시니어를 위한 직업교육 센터를 만들었다. 서울 불광동·공덕동·오류동 3곳이 있다. 수업료는 3개월 12번에 4만~10만원이다. 지난해 약 1만명이 349개 수업을 들었다. 권영근(60)씨는 '한국어 교사 되기' 수업을 골라 60시간 교육을 받았다. 그 뒤엔 인터넷 화상전화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실습을 10번 했다. 그는 "신청자 20명 중 절반만 졸업했을 정도로 고된 과정이었다"고 했다. 중학교 영어교사 출신인 이명희(60)씨는 '외국인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 마지막 날 외국인 3명 앞에서 서울 정동을 10분간 영어로 소개하는 '졸업 시험'을 치렀다. 이씨는 "교편을 35년 잡았는데도 외국인 앞에 서니 긴장되더라"고 했다.
시니어들의 전문성을 살린 일자리도 점점 늘고 있다. 시는 올 6월 무역업에 종사했던 시니어 10명을 뽑아 중소 무역회사에 투입한다. 이들은 수출입 서류 작성·경비 산출·바이어 상담 등 까다로운 업무의 노하우를 전수하게 된다. 시는 지난 3월 에너지 분야 실무 경험이 있는 40명을 뽑아 시 공공건물 50여 개의 에너지 사용 현황 조사를 맡기기도 했다.
노인이 노인을 돕는 노노(老老) 케어도 시니어의 주력 일자리다.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노인 스마트폰·컴퓨터 교육, 노인 아르바이트 골라주기 등이 있다.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재적소에 도움을 받을 기관을 연결해준다. 독거노인 집 수리공 김훈규씨는 "같이 나이 들어 가는 처지라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금방 알아챈다"고 했다.
일하며 봉사하는 시니어들은 삶의 질이 높다. 도쿄 도립 건강·장수 연구소는 봉사하는 시니어들이 그러지 않은 동년배보다 친구 수가 많고, 노쇠가 지연됐다고 한다. 도보 투어 해설사로 활동하는 이명희씨는 "해설사 활동을 시작한 뒤에는 하루에 2시간 넘게 걷는 데다 만나는 사람도 늘어 예전보다 오히려 젊게 산다"고 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5060세대 대부분이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길 원한다"면서 "이들이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어 일꾼으로 재조명받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니어들의 재취업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했다.(조선일보,2018.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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