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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중수비....인천시 문화재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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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31 11:30 조회1,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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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참성단을 개축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암벽에 정남향으로 가로 50cm 세로 105cm의 음각 테두리

를 마련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명문은 1행부터 7행까지는 각 30자 8행은 28자, 9행은 12자로 모

두 250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하유수 최석향은 조선 숙종 43년(1717년) 봄에 관내를 순시하면서 마니산에 올랐다가

참성단의 상당부분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 별장과 전등사 총섭승에게 중수를 명하여 공사를 마쳤다

고 한다.

참성단의 보수와 개축은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 조선 인조 17년(1639년)의 중수는 일반 년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조선 숙종 43년(1717년)의 중수는 참성단중수비를 통해서만이 확인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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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문]

우리나라 국토 수천여리를 통틀어 강화는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수백리에서도 마니산

은 나라에서 제사를 드리는 명산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 곳이 있으니 이곳

이 참성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연대가 오래되어 비바람이 씻기고 깎여 서쪽과 북쪽 양면이 반쯤 무너졌으며, 동편 계단

또한 많이 기울어져 이 고을 여러 어른들이 서로 더불어 개탄한 지 오래되었다. 부족한 내가 이곳의 유수

로 와 이고을을 지키게 되어, 올 봄에 고을을 두루 살피면서 시험 삼아 한번 올라가 보았는데 분연히 이곳

을 중수할 뜻이 생겨 선두포 별장 김덕하, 전등사 총섭승 신묵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다시 쌓게 하니

열흘이 채 아니 되어 공역을 다 며쳤다.

아! 무너진 곳을 일으키고 고치어 옛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은 고을을 지키는 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이다. 하물며 단군은 (중국의) 요 임금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시어, 실로 우리 동국 백성의 조상이 되시

는데, (손수) 단을 쌓아 하늘에 청결한 제사를 드리던 곳 임이라! 수천 년이 지나도록 후손들이 우러러보

며 공경할 곳이니 고쳐서 완전하게 하는 일을 어찌하지 않을 수 있겠느가?

신묵이 일의 시말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이를 알리기를 청함으로 이를 써서 기록하는 바이다.

정유(1717. 숙종 13) 단양월(5월)에 (강화)유수 최석항이 기록하다.

 

 

* 강화도 철새 
강화도내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추수가 끝난 논에 날아든 청둥오리떼와 쇠기러기, 큰기러기등을 만날 수 있으며 물빠진 갯벌의 장엄함도 만날 수 있다

등산로 
* 1코스 (7 km, 3시간 20분 소요) 
상방리 관리사무소 - 기도원 - 참성단 - 사기리주차장 
* 2코스 (7.5 km, 2시간 20분 소요) 
화도초등학교 - 주능선 - 참성단 - 상방리 관리사무소 

주차시설 
600대 주차가능 

입 장 료 
어른 - 개인 1,500원 / 단체 1,200원 
청소년 - 개인 800원 / 단체 600원 
어린이 - 개인 500원 / 단체 300원

출처; 인천광역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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