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돈대...인천시 문화재 제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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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8-27 10:22 조회1,126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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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때 성곽이나 변방 요지에 세워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련한 초소인 돈대는 일반적으로 주변보다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구릉을 깎아서 높게 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하였다. 간척지 벌 가운데의 작은 동산 위에 위치하는 화도돈대는 오두돈대(鰲頭墩臺)·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堡) 5진(鎭) 중 하나인 광성보(廣城堡)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쪽으로 700보 거리에 오두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1,390보 거리에 용당돈대(龍堂墩臺)로 이어진다. 강화외성과 연결되어 있으나 현재 주변의 외성은 소실되었다. 동쪽으로 나 있는 수구(水口) 옆에는 강화유수 한용탁(韓用鐸)이 1803년 세운 '화도수문개축기사비(花島水門改築記事碑)'가 있다. 성벽 터로 볼 때 평면은 사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북쪽에 무너진 성벽의 석재들이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면 성벽의 터만 남아 있을 뿐 완전히 소실되었다. 돈대 내부는 과일나무를 심은 밭으로 일구어져 있다. 강화군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돈대란]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이다.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 하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해둔다. [강화여행 가이드] 출처;인천광역시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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