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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서도 중앙교회... 인천시문화재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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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31 11:34 조회1,2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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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거나 그들의 영향에 의해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3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길상면 온수리 성공회 교회 그리고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2월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같은 해 7월에 한옥 예배당으로 완공 되었으며,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강화도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1866년 고종 3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프랑스 함대가 정족 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철수할 때까지 1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 함대가 초지진, 덕진진과 광성보를 차례로 함락시켰다. 이처럼 강화도는 19세기 말 우리 나라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그 전진적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고, 따라서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이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거나 그들의 영향에 의해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3곳에 이른다.

[ 강화 서도 중앙교회 ]

강화본도와 이웃한 이곳 주문도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893년 무렵이었는데 1902년 감리교로 개종한 윤정일이 주문도에서 전도활동을 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신자가 늘어남에 따라 1905년 서도 중앙교회가 설립되고 교회와 신자가 마음을 모아 영생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3년 2월 교회신도의 헌금에 의해 현재의 한옥 예배당이 세워졌고 1978년에는 교회의 이름이 주문교회에서 서도 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으르고 있다. 서도 중앙교회는 지붕이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에 홑처마 집으로 정면 4칸 측면 7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탑부로 사용되던 건물의 구조물까지 포함하면 정면 4칸, 측면 8칸의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 안은 중세전기의 서양교회양식을 하고 있으나 매우 단순하여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과 측랑, 중앙의 강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전통목조건물의 가구형식을 바탕으로 서양교회를 지었고 외양은 한옥건물이지만, 기독교의 내면이 드러나게 조화가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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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천광역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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