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 빼닮은 사립유치원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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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11-07 11:05 조회682회 댓글0건본문
권위주의 정권 빼닮은 사립유치원 대책
단톡방에 “유리창 깨고 탈출하라” … 폐원 도미노 우려
악덕 원장 밉지만 아동 75% 맡은 사립유치원 살려야
“북한의 국력이 남한과 비교도 안 되는데 유치원 수가 북한보다 적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전두환 대통령이 1980년 집권 초 남북한 비교 보고서를 들추다가 던진 이 말이 유치원 증설의 시발탄이 됐다. 재정은 부족한데 유치원 수를 빨리 늘리려니 사립의 설립 문턱을 낮추고 사설학원과 무허가 유치원에 인가를 남발했다. 861곳이던 유치원은 1987년까지 집권 7년간 4배 가까이(3233개) 급증했다. 유치원 부실화가 걱정됐지만 “한다면 한다”가 통하는 권위주의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부실 유치원’ 탄생기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2년은 ‘비리 유치원’ 탄생의 원년쯤 된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무상보육과 누리과정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연 2조원쯤 되는 거액의 예산이 유치원마다 평균 4억원씩 별 준비 없이 쏟아지면서 사달이 났다. 이따금 감사해 보면 불투명 회계의 비상등이 곳곳에서 켜졌지만, 당국은 덮어두기 일쑤였다. 국회의원·교육감 할 것 없이 막강한 학부모 표심을 의식해 비리에 애써 눈감았다. 개혁에 차일피일하다가 지난달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세금으로 오피스텔과 승용차·명품가방까지 샀다는 극단적 사례가 공분을 사면서 유치원생의 75%를 책임지는 사립유치원 전체가 비리 집단으로 찍혔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달 내놓은 고강도 공공화 방안 가운데 사립유치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목은 사유재산 문제다. “사립유치원의 법인화는 땅·건물 같은 사유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극력 반발한다. 하지만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6일 “원아 200명 이상 대형 유치원은 법인화를 강제적으로 해야 한다”고 공언해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3000명이 가입한 전국 사립유치원장 단체카톡방에는 “선장(정부를 지칭) 말 듣지 말고 유리창 깨고 빨리 세월호를 탈출(유치원 폐원)하라”는 격문이 이날 떴다. 머뭇거리다 폐원 기준이라도 강화되면 개인재산 찾아갈 기회가 사라진다는 경고다. 이미 당국의 전방위 압박에 폐원은 쉽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같은 사정 기관이 조사의 칼날을 벼리고 있다. 문 닫는다는 소문이라도 난 유치원엔 교육청 사람이 들이닥쳐 어른다. 한편에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최대 2억원 포상금을 내걸고 사립유치원 비리 신고를 석 달간 받고 있다. 이만한 우범집단이 따로 없어 보일 정도다.
폭발 직전의 살벌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국은 사립유치원과의 대화 문을 걸어 잠그고 백기 투항을 종용한다. 유 부총리는 “공공성 강화 방안을 들고 오기 전엔 사립유치원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비핵화 이전에라도 경제제재를 완화하자” 는 문재인 대통령의 유연한 대북 정책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불통의 강수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민감정이 동정적이지만은 않다. 여유 계층이 많은 사업이면서도 툭하면 집단행동으로 정치권이나 학부모를 몰아붙이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요는 대한민국 경제처럼 사립유치원도 압축성장의 홍역을 앓는 중이다. 1980년대 전두환 시절 우후죽순 생겨나 학교인지 학원인지, 보육사업인지 교육사업이지 헷갈리는 구조를 이후 정권들이 40년 가까이 폭탄 돌리기 하며 방치했다. 사립유치원을 둘러싼 갈등을 단지 설립자의 돈벌이 욕심으로만 모는 것이 단견인 까닭이다. ‘정치하는 엄마’ 들도 채근의 표적을 유치원에서 교육부 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토록 공론화 애용하는 정부가 이런 첨예한 갈등 사안에 왜 공론화위원회 하나 도입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다. 사립유치원 제자리 잡기에 옛 권위주의 정권의 “한다면 한다” 식 밀어붙이기를 답습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출처: 중앙일보2018.11.7] [서소문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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